교사校史[제2장]고텐코큐죠(皇典講究所)・고쿠가쿠인(國學院) 의 창설과 전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서양을 따라 배워 근대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일본의 장래 발전을 위해서는 전통문화도 또한 존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기운이 높아지고, 국학을 통해서 일본의 국체를 명확히 하며, 덕성을 함양하는 것을 연구나 취지・목적으로 하여 고텐코큐죠는 창립되었다.고텐코큐죠를 모체로 설립된 고쿠가쿠인은 일본의 전통문화를 배우고,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제적으로 유용한 국학적 연구・교육을 진행하는 기관으로서 독자적인 학풍을 계승해 오고 있다.

-고텐코큐죠의 창립-

고쿠가쿠인의 설립 모체인 고텐코큐죠는 1882년(메이지15)에 고전연구와 신관・국학자 양성을 중축으로 하여, 도쿄시(東京市) 고지마치구(麹町区) 이이다마치(飯田町)(현재 도쿄도 지요다구千代田区 이이다바시飯田橋)에 창설되었다. 같은 해 11월4일에 개최된 개교식에서 초대 총재인  아리스가와노미야 타카히토신노(有栖川宮幟仁親王)의 「학문은 근본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므로, 우선 건국이래 이어져오는 일본고유의 뛰어난 문화・국민성을 잘 탐구・인식하고 그것을 생활에 도입하여 인격을 닦고, 조국의 번영은 물론이고 널리 세계의 인류・문화를 위해서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일본인으로서 변함없이 지향해야할 목표이다」라는 고유(告諭) 정신이 고쿠가쿠인대학의 건학정신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 개교식이 이루어진 11월 4일은 오늘날 고쿠가쿠인대학의 창립기념일이다.

-고텐코큐죠 교정표-

초창기의 고텐코큐죠에는 문학부와 작업부가 있었고, 문학부에는 수신(修身)・역사・법령・문장의 4개과,작업부에는 예식・음악・체조의 3개과가 각각 있었다.이것은 문학부가 지육(智育), 작업부가 체육을 담담하고, 양쪽을 겸학하는 것으로 유용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이 고텐코큐죠의 주지에 입각한 것이였다.

-고쿠가쿠인의 성립-

1889년(메이지22) 1월에 고텐코큐죠의 초대소장이 된 사법대신(현재 법무대신)인 야마다 아키요시(山田顕義)는 대일본제국헌법발포・의회개설에 따른 입헌정치 운용에는 일본의 고전이나 역사 연구에 입각하여 국가의 기초를 굳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여 고텐코큐죠의 확장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국사・국문・국법을 고찰 연구하고, 해외백과학도 망라・겸수하여 지육(智育)과 덕육(徳育)을 함께 하는 것이 설립의 취지라고 구가했다. 초대인장에는 궁내성(宮内省)의 어가소장(御歌所長)・다카사키 마사카제(高崎正風)가 취임하고, 같은 해 11월22일에 개원식이 개최되었다.

-구 이이다쵸(飯田町) 교사(校舎)-
고텐코큐죠・고쿠가쿠인의 교지(校地)는 1923년(다이쇼12) 5월까지 도쿄시(東京市) 고지마치구(麹町区) 이이다마치(飯田町) 5쵸메 8번지(구 하타모토旗本인 아키모토 하야토秋元隼人 저택)에 있었다. 교사는 1902년(메이지35)・1906년(메이지39), 2번에 걸쳐 화재가 있었지만, 사사키 타카유키(佐佐木高行) 소장겸 원장(학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전화위복」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부흥확장에 진력했다. 그 결과 1908년(메이지41) 4월에 새로운 교사가 건설되고, 처음으로 「도서관」 명칭을 가진 도서열람실도 부설 정비되었다. 

-고텐코큐죠・고쿠가쿠인의 전개-
고텐코큐죠는 1898년(메이지31)에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1904년(메이지37)에는 고쿠가쿠인이 전문학교령에 따라 인가를 얻고, 그 2년 후에 「사립 고쿠가쿠인대학」으로 개칭했다. 1920년(다이쇼9), 고쿠가쿠인대학은 대학령에 따라 대학으로 승격하고, 명실공히 「대학」이 되었다. 고텐코큐죠・고쿠가쿠인대학의 발전으로 종래의 이이다마치의 교지(校地)・교사(校舎)로는 좁아서, 1923년(다이쇼12) 5월에 시부야 현재지로 이전하고, 다음해 6월부터 새 교사에서 수업이 개시되었다. 3개월 후인 9월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으로 재해가 있었지만, 복구에 진력하여 다음 해 1924년(다이쇼13) 11월 25일에 구니노미야 쿠니요시오(久邇宮邦彦王)의 제4대 총재 추재대식과 새 교사 복구준공식이 개최됨과 동시에, 당일은 그 사이에 작성된 교기가 게양되어 학장인 하가 야이치(芳賀矢一)작사・모토오리 나가요(本居長世) 작곡의 교가도 발표되었다. 

-시부야 교사 Ⅰ-
이전한 당초의 시부야 교사는 3층 건물 본관1동이었고, 쇼와초기의 학생수 증가로 인해 본관 뒷편에 2층 건물인 신관이 증축되었다. 또 1935년(쇼와10)에는 대강당도 건설되어 1984(쇼와59)년에 100주년기념관 건설까지 많은 학생을 배출하고 받아들였다.

-신생 고쿠가쿠인대학의 성립-
1945년(쇼와20) 전쟁이 종결되면서 점령정책은 신사에 대해서 강한 압력을 더하는 것이였다. 신사계는 이 난국에 맞서기 위해 일치단결하기로 하고, 고텐코큐죠는 다른 민간의 신사관계 단체와 함께 발전적으로 해소하여 신사본청이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단독 법인으로서 1946년(쇼와21)에 「재단법인 고쿠가쿠인대학」을 설립하고 법인이 경영하는 「고쿠가쿠인대학」으로 재발족했다. 법인은 1950년(쇼와25) 시행의 사립학교법에 입각하여, 51년(쇼와26)에 현재의 「학교법인 고쿠가쿠인대학」으로 바꿨다. 이와 같이 종전 직후 가장 혼란한 시기에 고쿠가쿠인대학 이사장・학장이 된 이시카와 이와키치(石川岩吉)는 그 유지・발전에 진력을 다했다.

-시부야 교사 Ⅱ-
관동대지진과 제2차세계대전의 전화(戦火)에도 견뎌온 교사도 건설된지 반세기가 지나자 노후화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쇼와30년대 이후, 창립80주년・창립 90주년 기념사업을 중심으로, 교지・교사 등의 시설확충이 착착 이루어져서, 이전 이래의 시부야교사가 일신되었다.

-현재의 시부야 캠퍼스-
2002년(헤이세이14) 에 창립 120주년을 계기로, 도시형대학으로서의 심볼성과 기능을 가진 내진성・안전성을 확보하고, 여유를 가진 캠퍼스를 목표로, 시부야캠퍼스 재개발에 착수하고 2009년(헤이세이21)에 완성되었다. 
2015년(헤이세이27)에는 130주년기념5호관이 준공되어, 시부야캠퍼스 제2차재개발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