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校史[제3장]아리스가와노미야가(有栖川宮家) 유래의 물건들

고쿠가쿠인대학에서는 다카마츠노미야 노부히토신노히키쿠코(高松宮宣仁親王妃喜久子) 전하의 배려로, 대대로 소장해 오던 아리스가와노미야가 및 노부히토신노(宣仁親王)・키쿠코비 두 전하와 관련이 있는 물건들을 배령하고 수장했다. 이것은 1882년(메이지15)에 고텐코큐죠를 설립할 때 아리스가와노미야타카히토신노(有栖川宮幟仁親王)가 초대 총재로 취임하고 난 이후의 인연이다. 아리스가와노미야가 유래의 물건은 정교하고 미술적인 가치도 높고, 궁정문화의 우아함을 전하는 것으로 귀중한 자료이다.

-아리스가와노미야・다카마츠노미야-

아리스가와노미야가는 후시미노미야(伏見宮)・가츠라노미야(桂宮)・간인노미야(閑院宮)와 함께 구 사친왕가의 하나였다.
아리스가와노미야가의 역사는 고요제이(後陽成)천황의 아들인 다카노미야 요시히토신노(高松宮好仁親王)를 초대로 하고, 3대 유키히토신노(幸仁親王) 때에 아리스가와노미야로 개칭했다. 이후, 서도, 가도(歌道)를 가학(家学)으로 하고, 대대로 계승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도 8대 타카히토신노(幟仁親王), 9대 타루히토신노 (熾仁親王)는 메이지천황으로부터 신임이 두터웠고 정부의 요직에 올랐다.
10대 타케히토신노(威仁親王)의 대에는 계승자가 없어 아리스가와노미야가는 단절되지만, 다이쇼(大正)천황의 예려로 제3황자인 테루노미야(光宮)(다카마츠노미야 노부히토신노高松宮宣仁親王)가 아리스가와노미야가의 제례를 계승했다.

-아리스가와노미야 타카히토신노와 고텐코큐죠-

아리스가와노미야 타카히토신노(有栖川宮幟仁親王)는 어릴적 이름이 야호노미야(八穂宮)이고 1823년(분세이6)부터 타카히토신노라는 이름을 받았다.
서도와 가도에 뛰어나서 메이지천황의 사범을 지내고, 왕정복고의 「5개조의 어서문(御誓文)」의 휘호를 했다. 1882년(메이지15)에는 메이지천황의 명령을 받들어 고텐코큐죠의 설립에 진력했다. 개학식 때 타카히토신노로부터 받은 「고유(告諭)」는 130주년이 지난 현재도 고쿠가쿠인대학의 건학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리스가와노미야가와 서도-

아리스가와노미야가는 가도(歌道)와 서도(入墨道)를 가문의 학문으로 했다. 5대 요리히토신노(職仁親王)는 아버지인 레이겐(霊元)천황에게 배운 서도를 기반으로 나중에 아리스가와류로 불리는 서도의 기초를 구축했다. 요리히토신노에 의해 창시된 서도는 6대 오리히토신노(織仁親王), 7대 쓰나히토신노(韶仁親王)에게 이어지고, 타카히토신노(幟仁親王)가 대성을 이루었다. 타카히토신노는 메이지천황의 서도사범이 되고, 1868년(게이오4)에 메이지정부의 기본방침을 나타낸 「5개조의 어서문」를 칙령에 따라 휘호했다. 타루히토신노(熾仁親王)는 아버지인 타카히토신노에게 서도를 배우지만 아리스가와류와는 다른 독특한 서풍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