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校史[제1장]국학이란 무엇인가

국학은 신도・일본문화의 제반 양상을 실증적으로 고찰하고 연구하여 그 성과를 생활에 적응시켜온 학문이다. 근세에 흥행한 국학은 다양성과 종합성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고전적(古典籍)이나 고기고물(古器古物) 등 구체적인 물건을 대상으로 하여 일본인의 마음에 다가가려고 했다. 국학자들은 네크워크를 형성하여 전국적인 활동을 하며, 메이지유신 이후에 국민교화나 교육, 출판활동을 전개했다. 근대 인문학은 국학의 영위를 중요한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고, 국학을 교명으로 하는 본 대학의 학문・교육의 출발점도 여기에 있다.

-『창학교계(創学校啓)』와 국학의 발생-

야마시로국(山城国) 이나리사(稲荷社,현재 후시미이나리다이샤伏見稲荷大社)출신이며, 국학의 시조로 불리우는 가다노 아즈마마로(荷田春満)는 도쿠가와 막부에게 국학 학교의 창립을 간청하는 『창학교계』를 집필했다. 그 학문 구상은 문학, 신도학, 국어학, 역사학, 법제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종합인문학이라 할 수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창학교계』는 아즈마마로의 죽음으로 인해 결국 막부에 제출하지 못했지만, 국학의 출발점의 상징으로서 후세의 국학자들에게 널리 존중되었다. 

-국학의 사대인-

가다노 아즈마마로(荷田春満)는 『고사기(古事記)』・『일본서기(日本書紀)』・『만엽집(万葉集)』을 비롯한 고전을 연구하고, 에도의 신관이나 무사에게 진기도(神祇道)나 가학(歌学)을 교수하여 국학의 학통을 세웠다. 아즈마마로에게 사사받은 가모노 마부치(賀茂真淵)는 활발한 저작활동을 하고 많은 제자를 키워서 국학을 일반에게 알렸다. 마부치에게 입문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고사기』의 최초의 상세한 주석서인 『고사기전(古事記伝)』을 집필하고, 일본의 고전에 관한 연구에 신기축을 수립했다. 노리나가 사후의 문인인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는 저작의 출판 등을 통하여 서민에게 국학을 더욱 더 보급시켰다. 에도시대에 활약한 이 4인의 국학 대가는 「국학의 사대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학의 계승과 전개-

국학은 스승에서 제자로 계승되어 갔다. 국학자의 교수법은 면회나 서간을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점차 사숙이나 학교를 창립하고 후진 육성에 힘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맹인 국학자인 하나와 호키이치(塙保己一)는 막부의 후원을 받아 와가쿠코단쇼(和学講談所)를 설립하고, 문인들과 함께 『군서류종(群書類従)』을 간행하는 등 왕성한 교육・출판 활동을 전개시켰다. 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나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의 문류에는 막부말 유신기 이후의 근대에 신도나 국학의 세계에서 활약한 사람들이 연이어 나오고 국학의 흐름을 이어받고, 고텐코큐죠(皇典講究所)・고쿠가쿠인(國學院)의 창설로 이끌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