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神道[제1장]여러 시점에서 신도를 생각한다 

일본 신들을 위한 마츠리는 사람들이 정착한 이래,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고분시대에는 현재 신보(神宝)가 된 물건들이 신에게 바쳐졌다.
7세기후반, 농경 마츠리를 중심으로 신도제사 제도가 정비되었다. 천황이 마츠리에 깊이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중에서 다이죠사이(大嘗祭)나 이세신궁(伊勢神宮)에서 행해진 식년천궁(式年遷宮)이 특히 중시되었다. 헤이안시대가 되면 천황과 관계가 깊은 마츠리가 증가했다. 이것은 “오야케마츠리(公祭)”라 불린다. 오야케마츠리의 흐름을 이어받은 가모마츠리(賀茂祭)나 이와시미즈마츠리(石清水祭) 등은 요즘도 일본 마츠리의 대표격으로 여겨진다.
 

-다이죠사이(大嘗祭)-

7세기후반, 율령제 정비와 함께 조정제사는 제도화되었지만, 천황이 지내는 제사는 다른 제사와는 일선을 긋는 중요한 의식이였다. 특히 천황즉위 후에 거행되고, 천황 자신이 하룻밤내내 신전에 신곡 등을 바치는 다이죠사이는 매우 중요시 되었다. 
다이죠사이 때는 유키(悠紀)・스키(主基)를 중심으로 제장(斎場)・다이죠궁(大嘗宮)을 설치하는 등 특별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건물을 세우는 것에는 아주 간소한 것을 보면 옛날 마츠리 형식을 상기시킨다. 다이죠사이는 중세말기부터 근세초기에 걸쳐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기록상에는 13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제사-

이세신궁(미에현三重県)에서 지내는 가미(神)마츠리의 정중함은 황조신(皇祖神)・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셨기 때문이다. 7세기후반에는 이미 천황의 친척에 해당하는 미혼의 황녀가 제왕으로서 이세에 가서 천황 대신에 그 지역의 주요한 제사에 임했다. 
그리고 신궁에서는 20년에 한번 건물, 신보(神宝), 세간품을 새로 만드는 식년천궁(式年遷宮)이 이루어지고 규칙이 만들어졌다. 전국시대 한때에는 정기적으로 실시되지 않은 시기도 있었지만, 일대국가적 사업으로서 자리매김되었다. 식년천궁의 중핵은 신이 계시는 고쇼덴(御正殿)을 다시 만드는 일인데, 이 고쇼덴의 양식인 유이츠신메이즈쿠리(唯一神明造)는 옛형태를 반영한 건축양식이라 한다.

-오야케마츠리 (公祭)-

8세기에 연간 13종19식의 제사가 율령으로 정해졌다. 3,132좌의 진기(神祇, 하늘과 땅의 신)를 대상으로 하는 기년제가 대표적이지만, 이러한 전국신사를 대상으로 지내는 제사는 그 집행을 신사의 하후리베(祝部, 신관)에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다 이루어질 수 없었다. 헤이안시대 전기에는 이러한 제사와 함께 천황의 모계 우지가미(氏神)나 도주변의 진기에게 지내는 새로운 제사=오야케마츠리가 거행되었다. 이러한 제사의 헤이하쿠(幣帛, 폐백)의 대부분이 천황의 내정경제를 담당하는 구라료(内蔵寮)에서 준비된 것을 보면 오야케마츠리 창사(創祀)의 원동력이 천황의 신들에 대한 신앙심에 있다는 것을 엿볼수 있다. 현재 “산치쿠사이(三勅祭)”라 불리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모사이(賀茂祭), 가스가사이(春日祭), 이와시미즈사이(石清水祭)는 모두 다 나라(奈良)・헤이안(平安)시대에 시작된 오야케마츠리의 흐름을 이어받고 있다.

-하라에(祓)-

하라에는 원래 죄를 씻는 행사로서 옛부터 중요하게 여겼지만, 사용되는 도구는 일정하지 않았다. 현재 많은 신사에서는 오누사(大麻)로 불리는 종이나 마를 붙인 긴 봉을 사용한다. 『연중행사에마키(年中行事絵巻)』의 묘사에서 보면, 이 오누사가 고대이후의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한편, 고대의 법제사료인 『연희식(延喜式)』에서는 금속으로 만든 인형을 사용하여 하라에를 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지금도 가모사이(賀茂祭)에서는 천황이 파견한 칙사가 긴진(銀人)이라는 인형을 사용하여 하라에를 한다. 이 때 도키나와(解縄)라는 작은 원을 그린 끈 등을 같이 사용한다. 끈도 고대부터 사용하던 도구였다. 
또 개개 신사에서 독자적으로 행하는 하라에도 있다. 가모미오야(賀茂御祖)신사에서는 마츠리를 하기 전에 신관 스스로가 하라에를 하는데 거기서 사용되는 고누사(小麻)나 도키나와는 특징적인 것이다.